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 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하와의 저주
하와가 받은 저주는 출산의 무서운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었습니다.
해산시의 모든 진통과 신음은 죄의 숙명적인 결과를 큰 소리로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류에게 단산의 저주 되신에 해산의 고통을 주신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출산은 본래 인간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축복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새 생명의 기쁨은 모든 해산의 고통을 잊게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이 출산의 기쁨은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실 예수님을 통하여 인류의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한편 하와에게 하신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라는 말씀에는 부부관계에 대한 성경적 원리가 들어 있습니다.이 표현은 직역하면 "너는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입니다.(공동번역)남편과 야내는 평등하지만 그 영적 권위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을 아내의 머리로 만드셨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아담의 저주
하나님은 아담에게 저주하신 이유에 대해"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한즉"(17)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남편의 가정에서 영적인 문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와 같은 영적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리어 아내의 범죄에 동조했던 것입니다.
아담의 저주는 먼저 땅에 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비옥하던 땅은 가시덤불과 엉컹퀴를 내는 불모지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이 그 대표자인 그 인류로 인해 함께 고통하게 된 것입니다.사실 노동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부여하신 특권이었습니다.
노동을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에 동참하며 영적 리더쉽을 부여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는 이 같은 노동을 양식을 얻기 위한 고통스러운 행위로 변질시킨 것입니다.
아담에게 임한 또 한가지 저주는 죽음입니다.아담이 인류의 대표자라는 점에서 이것은 인류 전체의 죽음을 의미합니다.죽음은 원래 없던 것이 죄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기독교는 죽음을 '원수'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고전15;26)
우리는 죽음이 없는 몸의 구속을 기다려야 합니다.
'창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4장1~5 (0) | 2018.01.27 |
---|---|
창세기3장20~24 (0) | 2018.01.14 |
창세기 3장 11~15 (0) | 2018.01.01 |
창세기 3장 7~10 (0) | 2017.12.24 |
창세기3장1~6 (0) | 2017.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