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바른 금식과 재물사용

혜숙 2013. 2. 16. 17:50

마태복음6;16~24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

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

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바른 금식  

구제 기도와 더불어 경건의 바른 정신이 무너지고 있던  세 번째 영역은  금식이었습니다.유대인들에게는 속죄일의금식(레16;31)을 비롯하여 몇 차레 금식 행사가 있으며 경건한 유대인들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금식은 가장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가난한 이들을 구제함으로(사 56;6 ~7) 삶의 우선 순위를 재정립하기 위한 영성훈련의 한 방편입니다. 당시 바리새인 들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금식할 때마다 세수도 빗질도 하지않고 심지어 창백하게 보이려고 얼굴에 횟가루를 바르기까지 했습니다.이처럼 금식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눈을 향하는 것은 하나님을 이중으로 모독하는 행위입니다.예수님은 금식할때 겉모습을 봐서는 아무도  금식하는것을 알지 못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금식하는자에 대해  "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바른 재물사용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교훈하셨습니다.이 말씀은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풍부한데 있다는 어리석은 환상에 빠져 (눅12;15) 궁핍한 이웃에 대해 무관심 하면서 자신만을 위해 재산을 쌓는 것을 금하신 것입니다.사실 이렇게 재산을 축적하는 사람들은 불행합니다.자기의 소유를 지키기 위해 계속 근심가운데  지내야 할 뿐 아니라 결국 그것을 제대로 지킬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딤전 6;10 대신 예수님은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명하십니다.그 이유는 그것이 가장 안전할 뿐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 보물보다 귀한 우리의 마음이 세상의 물질숭상에 메이지 않고 하나님께 가 있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한편 육신의 눈의 성하고 나쁨이 온몸에 영향을 미친다면 영안의 밝고 어두움은 영혼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만약 영안이 진리로 말미암아 관대하고 긍휼에 차있다면 그의 삶은 빛나게 될 것입니다.하지만 영안이 욕심으로 인해 탐욕스럽고 인색하다면 자신의 삶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만큼 어두워질것입니다.영안이 밝아지기 위해서 성도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그것은 마치 노예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대다수의세상 사람들은 재물의 위력 앞에서 굴복하여 그것을 신처럼 섬기고 있습니다.하지만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는 사람입니다.성도에게 돈은 부림의 대상이지 결코 섬김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성도가 사는 법 

마태복음 6;25~34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생명을 사랑하는 방법    

목숨은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입니다.그리고 이 목숨을 위하는 구체적인 행동은 대부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는것으로 나타납니다.그리고 이 같은 염려는 자연스럽게 재물에 대한 집착과 숭배로 까지 이어지게 됩니다.하지만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주객이 전도된 어리석은 행동이기 때문입니다.사실 목숨과 몸은 음식이나 의복과는 견줄 수 없이 중요한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중요한 목숨과 몸을 주셨다면 그것에 필요한 음식과 옷을 주신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공중의 새들과 들의 꽃들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아름답게 먹이시고 입히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성도가 의식주 같이 부수적인 것을 위해 죽고 살 문제처럼 집착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성도가 생명을 사랑하는 방법은 자기 생명에 부여된 사명에 집중하는 것입니다.우리의 사명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여기서 '의'란 도덕적인 용어가 아니라 관계적인 용어로서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온전해 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성도는 이 같은 사명에 먼저 집중해야 합니다.사실 의식주의 문제는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자연스럽게 제공되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일 일을 염려 말라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내일의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이 말씀이 금하는 것은 사려 깊은 예측과 그에 따른 준비가 아니라 번잡한 염려와 결코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어려움에 대해 지레 겁먹는 태도입니다.사실 내일에는 그날의 염려와 짐들이 새롭게 올 것이지만 또한 그날의 힘과 공급 역시 새롭게 찾아올 것입니다.여호와의 긍휼이 아침마다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내일의 염려를 미리 꾸어와서 하나님께서 조금씩 짊어지도록 지혜롭게 배열해 놓으신 것을 한꺼번에 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성도는 내일 일을 자랑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또한 내일 일을 위해 염려해서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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