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age QT

Message QT 십자가의 도

혜숙 2013. 3. 27. 03:00

고린도후서 5;14~15,21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핵심은 대신입니다.

이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는것입니다.

실제 이것은 거의 망각되고 있는 진리이며 실생활에서는 거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진리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대신하여' 라는 단어들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14절에는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은 것이니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동일하다고 말합니다.

예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15절에서는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돌아가신 것은 모든 사람으로 예수로서의 삶을 살게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예수님의 삶이 나의 삶이 되었다는것입니다.

2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를 대신하여 정죄하신 것은 우리가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무죄가 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의가 나의 의가 되었다는것입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도가 대신의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자들은 아직도 자기가 해야 하고 자기가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했다고 생각하면 교만해지고, 반대로 자기가 못했다고 생각하면 정죄감과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것은 잘못된 율법주의적인 태도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원하시는 기준이무엇인지 보여주고 범죄한 인간이 스스로

그것을 이룰 수 없음을 자각하게 하여 겸손하게 참회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교만과 죄책감이라는 율법주의적인 신앙생활에는 십자가의 대신의 원리가 전혀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십자가 마져도 더 깊은 죄책감을 주는 역활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까지 지셨는데 나는 뭐 하고 있는가? 아직 내가 죽지 못하고 시퍼렇게 살았으니... "

많은 신자들이 여전히 어떻게 해야 자신이 죽을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어보려고 애를 쓰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력으로 십자가 지는것 , 노력으로 죽으려고 하는사람은 죽은 척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더 무섭습니다.

죽은 줄 알고 건드려 보면 몇 번은 참지만 부활하면 폭발합니다.

더 무섭습니다.

 

 

 

십자가의 도란 절대 내가 십자가 지는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대신해서 하신 사역이 바로 나의 사역과 동일함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 예수님의 삶을 내가 사는것 , 예수님의 의가 나의 의라고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가 우리 대신 찔림을 받으셨고, 그가 우리 대신 상함을 받으셨기 때문에, 그가 받은 징계로 우리는 대신 평화를 누리게 되어 있고, 그가 맞은 채찍으로 인해  우리는 치유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