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무릎의 야고보
초대교회 시대에는 ‘야고보’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으로
여러 명의 사람들이 이 이름으로 불리워졌습니다.
먼저 '세베대의 아들'로 헤롯에 순교당한 야고보가 있습니다. (행 12:2)
다음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있는데,
그는 열두명의 제자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12 사도 중 한명인 '유다의 아버지' 야고보 (눅 6:16)와
그리고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 (먁 6:3)가 있습니다.
1.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의 인적 사항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으로' 요셉, 시므온, 유다와 형제였고 (마 13:55)
부모는 요셉과 마리아 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은
형제들과 더불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다. (요 7:5)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이 후 (고전 15:7)
예수님의 증인 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 이후 베드로, 요한과 더불어
교회의 인정받는 지도자가 되었으며, 나중엔
예루살렘 총회의 의장격인 감독으로 일하였습니다.
2. 생애
그는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거룩한 사람으로 태어났으며,
입에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않았고, 살아있는 것을 먹지 않았으며,
자신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고, 기름도 바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소에 들어가도록 허용된 유일한 인물이었는데
이는 그가 모직으로 된 옷을 입지 않고 오직 세마포 옷만 입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항상 홀로 성소에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그의 백성들에 대한 용서를 간구하였으며,
이로 인해서 그의 무릎은 마치 낙타의 무릎처럼 딱딱해졌다 합니다.
특히 그는 율법의 모든 규례를 하나도 어김없이 다 지켰으며
이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았고 의인이라는 칭호와
"오블리아스" (백성들의 보루)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습니다.
그가 이와 같이 모든 율법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통해서 새로운 힘을 얻었기 때문으로 말하고 있으며,
이 같은 그의 삶은 구약과 신약, 율법과 은혜를 잇는 교량 역활을 하는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한 예로 공회지도자들이 야고보에게 청하기를
"오, 의로운 자시여!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모여드는 백성 앞에서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님을 천명해 주시요!" 라고 부탁하고
그 날 성전 꼭대기에 세워 말씀을 증거케 한 자리에서 야고보는
담대히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지금 하늘 나라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장차 구름을 타고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라고
큰소리로 외치자 군중들은 이 소리를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여"라고 환호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당황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를 성전에서 밀어
떨어뜨렸으나 죽지 않자 돌로쳐 죽였습니다.
그 때 야고보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주가 되시며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이시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저들이 하는 행동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며 잠들었습니다 (A.D. 62).
그들은 야고보의 시신을 성소 옆에 묻었고
그의 묘비는 아직도 그 곳에 남아있다 합니다.
그는 유댜인들과 헬라인들에게 예수꼐서 그리스도 이심을 증거하며
최후를 마친 참 된 증인으로서의 삶을 산 사람입니다. (유세비우스)
3. 사역
그가 예수님 생애 동안에는 그 분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다가
나중에 그리스도의 순교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전 15:7)
히브리어 복음서 (제롬에 의해 쓰여진 기사)에 의하면
"야고보는 예수의 부활이 있기 전까지는
결코 먹지 않을 것을 맹세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가리고 있는 육체를 벗어버림으로
야고보로 하여금 자신이 구세주임을 깨닫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자마자 그의 형제인 야고보에게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야고보에게 "식탁을 준비하고 빵을 가져 오라" 하시고,
그 빵을 축복한 후 야고보에게 주시며 "나의 형제 그대여 빵을 취하라,
인자는 잠자는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야고보는 그 후 일생동안
오직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불렀으며
죽을 때까지 온전히 주님만을 섬겼습니다.
특히 그의 특출난 역활은 오순절 성령 사건으로서 초대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사마리아 팔레스타인,
유럽으로 확산되어 가던 때에 울법과 복음과의 관계,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관계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신앙적 문제를 신학젹으로
정리 해주는 역활을 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행 15:19-20)
기독교에 대한 유대교의 종교적 박해와 네로 황제의 기독교인 탄압에 대한
로마의 정치적 박해가 심해지는 때에 예루살렘 교회를 지킨 기동같은 인물로써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시험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야고보서를 통하여 진지한 당부와 위로를 전하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4. 사역의 특징
1) 이방인 할례에 대한 문제 해결 (행 15:19-20)
안디옥 교회에서의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는
유대인들의 주장에 따라 유권 해석을 위하여
예루살렘 공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 때 의장격으로 있던 야고보는 이 문제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잘 처리함으로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오는 신앙의 전환점을 이루었습니다.
(1) 율법보다 중요한 것은 이방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 (15:16-17)
베드로의 고넬료 가정 구원과 사마리아에서의 빌립 전도등으로
이미 이방인들의 구원을 하나님께서 시작하셨으며
그들의 성령충만함의 체험은 율법준수와 관계없이
이루어 진 것임을 먼저 인식시켰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반드시 두 가지 현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먼저 믿음에 관한 신앙적인 문제이고 또 하나는
생활에 관한 믿음 적용 문제입니다. (제사, 음식, 풍속 등)
구원은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수정하기에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문화의 문제는 수정이 가능함으로 야고보는 율법에서도
특히 하나님이 명령하신 금지 사항만을 선별하여 결정 내렸습니다.
(2) 성령님의 결정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행 15:28)
문제가 해결된 것은 자신을의 회의나 토론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성경의 말씀을 토대로 성령님이 한 마음을 주셨기 때문임을 야고보는 주장했습니다.
세상은 급하게 돌아가는데 성령님의 뜻은 깨달을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성령님의 뜻이 필요 없이 모든일이 잘 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지시하실 때도 있습니다. 성령사역, 성령 생활은 성령님과 항상
동행, 동역, 연합, 의식의 삶 임을 야고보는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2) 고난 중에 오는 시험에 대한 문제 해결 (약 1:2-4)
세상에서는 문제가 없는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 것은 무난한 상태의 삶을 사는 것에 불과합니다.
정작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상태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며 그 분의 은혜로써 여기고 사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