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age QT

Message QT 내가 여기 있나이다

혜숙 2022. 6. 23. 21:30

창세기 22장 1절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창세기 22장 11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강단에서는 언제나 기도에 대한 강조가 넘쳐납니다 기독교서점에는 기도에 대한 책은 넘쳐납니다 기도에 대한 방법들을 자세히 알려주는 세미나들도 많고 사람들도 넘쳐납니다  그러나 실제 신자들은 여전히 거의 기도하지 않고 있는 것같습니다 "왜 기도하지 않느냐?"하는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기도가 무엇인가 ?"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영광돌리고 즐거워하려면 하나님 앞에 있어야합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요12:26) 이처럼 하나님 앞에 있는것.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는 창조의 목적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의 극적인 한 표현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는 고백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부르실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고백하는 경우가 7번 나옵니다 그들이 영이신 하나님의 음성 앞에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말할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앞에 있는 사람. 달리 말하면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를 고백하는것이 창조목적이라고 하면 반대로 창조목적을 역행하는 것 역시 "내가 여기 있나이다"를 고백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했을때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신  것은 옛날 같으면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고백했을 그가 더 이상 고백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쌓은 모든 업적과 성과는 우리의 기도 골방에 비하면 배설물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남긴 족적 중 대다수의 업적은 모래위에 남긴 발자국처럼 사라질 것이고 기도한 시간만이 반석위에 새긴 발자국처럼 천국에서도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의 가장 좋은 것 우리가 들이는 수고의 고갱이를 내놓아야 하는 일입니다 조셉 엘레이 목사는새벽 4시부터 8시까지 기도했는데 어쩌다 상인들이 저보다 먼저 일어나 일을 시작하는 소리를 듣게 되면 "주님 섬기기 위해 기도하는 나의 일을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저들의 일보다 못한 일로 만들었다" 고 탄식하며 회개했다고 합니다 큰 저택에서 집사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주인이 찾을 때 "예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충성된 신자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께서 찾으실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