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보배로운 두 이름
혜숙
2013. 9. 13. 20:23
빌립보서 2:19~30
19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20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21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23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24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디모데
바울은 사랑하는 지체들의 형편을 소상히 앎으로 인해 격려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19하)성도의 교제에는 안위함이 있기 때문입니다.이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를 속히 빌립보교회에 보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19상)그 이유는 뜻을 같이하여 빌립보 성도의 사정을 진실로 생각할 자가 디모데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사실 바른 앎이란 단순히 가서 본다고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대다수의 사람은 자기 중심으로 보고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달하기 쉽습니다.하지만 디모데는 예수의 일이 진정으로 자기일이 된 사람이었기에 진실하게 양무리의 사정을 살필 수 있었고 목자된 바울에게 올바로 알릴 수 있었습니다.(22)바울은 이 같은 사실을 빌립보교회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22상)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디모데의 신실한 사역을 지켜보아 왔던 것입니다.시간은 그 사람의 어떠함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이에 바울은 재판 결과가 어떤지를 본 후에 곧 디모데를 빌립보에 보내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3)
에바브로디도
이어서 바울은 자기 형제요, 동역자요, 그리스도의 군사인 에바브로디도를 조속히 돌려보낼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바울로 부터 이렇게 존귀한 호칭으로 불리는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교회가 로마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을 돕기 위해 파송한 사람이었습니다.(25)그리고 그는 이 같은 사명을 위해 목숨을 돌보지 않고 바울을 섬겼습니다.그가 이렇게 헌신적으로 봉사한 근저에는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 인해 바울을 제대로 도울 수 없는 빌립보 성도들의 부족함을 어떻게든지 채우고자 하는 사랑이 있었습니다.하지만 에바브로디도는 과로로 인해 병을 얻어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그러나 그는 자신이 죽게 된 것보다 이 소식으로 인해 염려할 빌립보 교인들로 인해 더욱 크게 걱정하였습니다.(26)바울은 이 같은 에바브로디도로 인해 근심 위에 근심을 하였고 또한 그의 치유로 인해 크게 기뻐하였습니다.(27)그리고 속히 그를 돌려 보냄으로 빌립보 성도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자 하였습니다.한편 오늘 본문에는 근심이라는 단어가 4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그런데 이 근심은 세상 근심과는 달리 아름다운 사랑의 근심이며 이러한 근심은 더 아름다운 기쁨으로 되돌려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