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age QT 주가 쓰시겠다
마가복음 11;1~6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본문에 등장하는 나귀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가 예수님을 '주'로 인정한 사람임은 분명합니다.이 때문에 제자들이 그에게 '주가 쓰시겠다'라고 할 때 당연한 것처럼 보내드렸던 것입니다.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귀 주인의 행동이 정말 쉽지 않은 것이었음을 느끼게 됩니다.교회에서는 이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의 주라고 가르칩니다.또 찬송가 속에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가사를 넣어 부르고 예배 분위기가 고양될 때면 큰 소리로 예수를 왕이라고 선포하기도 합니다.하지만 대부분의 신자가 실제 예수님께서 소유권을 주장하실 때 얼마나 난처해 하는지 모릅니다.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영국여왕과 똑 같습니다.영국여왕은 명목상 백성을 다스리는 왕입니다.그녀는 공식적인 행사에 제복을 입고 참석하여 연설을 하기도 합니다.그녀는 가는 곳곳마다 찬양과 환대를 받습니다.하지만 영국여왕은 실질적 권력은 거의 갖고 있지 않습니다.만약 여왕이 지나가는 차를 붙잡고 이유없이 그것을 달라고 했다면 큰 논란이 될 것입니다.여러분은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을 '주'로 고백했습니까?예수님께서 만약 지금 여러분에게 주가 쓰시겠다고 하면서 여러분의 지갑이나 통장이나 집문서를 요구한다면 얼마나 놀라시겠습니까?대부분의 신자들은 이런 말로 거부했을 것입니다."미안합니다. 예수님, 사실 저는 그런 뜻으로 '주'라고 고백한 적이 없습니다.!"물론 신자 중에는 모든 것을 주를 위해 드리고 싶은 헌신적인 신자들도 있습니다.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도 나귀 주인처럼 나귀를 보내기는 쉽지 않은 것입니다.열정적인 사람은 주가 쓰신 다는 것에 대해 뭔가 거창한 것을 떠올립니다.그리고 주께 쓰임 받는 일을 위해 한번 순교의 제물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가져보기도 합니다.그런데 고작 돌려받을 나귀를 잠시 빌려 달라는 이름도 드러나지 않을 소소한 헌신을 요구받는 것은 너무 시시하기 때문입니다.이 때문에 그들은 이렇게 항의하며 거절할 것입니다.'주님 내가 기대했던 쓰심은 이런 것이 아니었습니다."하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은 너무 평범합니다.그리고 주께서 원하시는 대부분의 헌신은 그런 일상을 드리는 산 제사입니다.주께서 쓰시면 우리 일상의 지루한 일들이 예배가 될 것이고 매일의 짜증스런 의무들도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헌물이 될 수 있습니다.올바른 정신으로 행한다면 마루를 닦는것도 우리가 선교사가 되느냐 청소부가 되느냐 은사의 차이일뿐 복음을 전하는 것 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